전체 글 51

하자없는 집 만들기 #03 | 허가도면의 계단이 욕실에 막혀 있었다

허가까지 받은 도면이었어요.그런데 지하에서 1층으로 올라갈 방법이 없었어요.허가도면 지하1층: 계단이 15단에서 욕실에 막힌다처음엔 제가 잘못 그린 줄 알았어요2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면을 3D로 세우고 계단을 따라 올라가 봤어요.지하에서 출발해서 한 칸, 두 칸… 올라가다 보니15단째에서 앞이 벽으로 막혀 있었어요. 1층 바닥까지는 아직 1m 넘게 남았는데요.막고 있던 건 욕실이었어요.처음엔 제가 3D를 잘못 세운 줄 알았어요.도면 선을 다시 확인하고, 층 높이를 다시 확인하고, 계단 위치를 다시 확인했죠.그런데 틀린 게 없었어요.허가도면의 지하 평면도를 보면 계단은 15단까지만 그려져 있고,계단이 계속 이어져야 할 자리에 욕실이 들어가 있었어요.1층 평면도를 펼쳐보니 바로 위 같은 자리에도 욕실이..

사유원·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안양파빌리온 | 알바로 시자 한국 작품 답사 (세계 건축가×한국 #06)

하얀 벽, 빛이 스며드는 틈, 말없이 이어지는 길. 포르투갈의 거장 알바로 시자는 아시아에서 처음 설계한 건물을 한국에 지었고, 이후 파주, 용인, 군위까지 한국 곳곳에 작품을 남겼습니다. 한 건축가의 작품을 네 곳이나 찾아다닐 수 있는 나라는 흔하지 않습니다.건축가는 누구인가국적: 포르투갈 (1933년 마토지뉴스 출생)수상: 1992년 프리츠커상, 200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작품 부문), 2009년 RIBA 로열 골드 메달,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평생공로)건축 철학 키워드: 장소성, 빛, 흰 벽, 비판적 지역주의, 절제와 침묵, 스케치에서 출발하는 설계대표작레사 수영장 (포르투갈 레사 다 팔메이라, 1966)포르투 대학교 건축대학 (포르투갈 포르투, 1990년대)산타마리아..

하자없는 집 만들기 #02 | 2D 도면을 3D로 세웠더니 보인 것들

도면 28장을 몇 번이나 넘겨봤는데도 안 보이던 게,3D로 세우고 한 바퀴 돌려보니까 바로 보이더라고요.옹벽까지 포함한 3D 모델 버드뷰왜 굳이 3D로 세우나요?도면은 집을 잘라서 보여줘요.평면도: 위에서 가로로 자른 모습입면도: 밖에서 본 한쪽 면단면도: 세로로 자른 한 장면문제는 하자가 주로 이 "자른 면들 사이"에 숨어 있다는 거예요.평면도에선 멀쩡하고, 단면도에서도 멀쩡한데, 둘을 합치면 안 맞는 것들이요.사람 머릿속으로 28장을 겹쳐 입체로 그리는 건 한계가 있어요.그래서 저는 도면을 받으면 SketchUp으로 먼저 세워봐요.이번엔 CAD 도면의 선을 그대로 읽어서 벽, 바닥, 창, 계단을 도면 치수대로 세웠어요."대충 비슷하게"가 아니라 도면 그대로여야 도면의 오류도 그대로 보이니까요.발견 ①..

남양성모성지 대성당·리움 M1·강남 교보타워 | 마리오 보타 한국 작품 답사 (세계 건축가×한국 #03)

강남대로를 지나다 보면 유리 빌딩 숲 한가운데 붉은 벽돌을 두른 고층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교보타워입니다. 이 건물을 지은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서양 건축가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작업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서울 한남동 미술관부터 화성 들판의 대성당, 제주 바닷가 클럽하우스까지, 그의 벽돌을 따라 한국을 한 바퀴 돌아봅니다.건축가는 누구인가국적: 스위스 (1943년 스위스 티치노주 멘드리시오 출생)수상: 프리츠커상 수상 이력은 없음. 2024년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의 '코리아 이미지 디딤돌상(Stepping Stone Bridge Award)' 수상 (출처: Korea.net)건축 철학 키워드: 붉은 벽돌과 테라코타, 원·사각·삼각 같은 단순한 기하학, 대칭, ..

제주 방주교회·수풍석뮤지엄·포도호텔 | 이타미 준 건축 답사 코스 (세계 건축가×한국 #17)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평생 귀화하지 않았고, 이름에는 '유동룡'이라는 한국 이름을 품고 살았던 건축가가 있습니다. 제주 중산간의 오름과 초가, 돌과 바람을 건축 언어로 바꾼 이타미 준입니다. 그의 흔적을 따라 제주 안덕과 한림, 그리고 아산까지 가 봅니다.건축가는 누구인가▲ 이타미 준(유동룡) · 사진: Htwzzz /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국적 / 생몰: 한국 국적 재일교포,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 2011년 6월 26일 도쿄에서 별세 (향년 74세)본명과 활동명: 한국 이름 유동룡(庾東龍). '이타미'는 이타미 공항에서, '준'은 친하게 지낸 작곡가 길옥윤(요시야 준)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 살겠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에요(시사IN).학력: 일본 무..

하자없는 집 만들기 #01 | 허가도면을 받으면 제일 먼저 보는 것들

평면도부터 펼치고 싶은 마음, 잠깐만 참아주세요.집의 하자는 생각보다 "땅"에서 먼저 시작되더라고요.배치도: 대지 모서리의 원래 땅 높이와 계획 높이도면 묶음을 처음 받았을 때프로젝트에 합류하고 처음 받은 게 허가도면 묶음이었어요.건축도면만 28장, 여기에 구조·설비·토목도면까지 폴더가 네 개.보통 건축주분들은 이걸 받으면 평면도부터 펼쳐보세요."안방은 어디지? 주방은 얼마나 크지?" 제일 궁금한 게 그거니까요.저도 예전엔 그랬는데, 이번엔 순서를 바꿨어요.평면도는 제일 마지막에 봤어요.대신 이 순서로 넘겼습니다.① 땅의 높이: 지금 높이 vs 계획 높이제일 먼저 본 건 배치도에 적힌 땅의 높이예요.도면에는 보통 두 가지 높이가 있어요.지금 땅 높이 (현황 지반고)집을 지을 높이 (계획 지반고)이 두 숫..

DDP 건축 해설과 무료 건축투어 안내 | 자하 하디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세계 건축가×한국 #02)

서울 한가운데서 직선이 하나도 없는 건물을 만날 수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곡선의 여왕' 자하 하디드가 한국에 남긴 대표작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건물이지만, 이제는 서울 야경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풍경이 됐습니다.건축가는 누구인가국적: 이라크 바그다드 출생, 영국에서 활동 (1950–2016)수상: 2004년 프리츠커상(여성 최초), 2016년 RIBA 로열 골드 메달(여성 단독 최초)건축 철학 키워드: 해체주의에서 출발한 유동성, 파라메트릭 디자인, 지형처럼 흐르는 건축, 직각의 거부대표작비트라 소방서 (독일 바일암라인, 1993)MAXXI 국립 21세기 미술관 (이탈리아 로마, 2010)런던 아쿠아틱스 센터 (영국..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세계적인 건축가 작품 51곳 답사 지도 | 프리츠커상 건축 총정리 (세계 건축가×한국)

원주의 산속 미술관, 제주 들판의 작은 교회, 동대문 한복판의 은빛 곡선, 한강 너머로 솟은 555m 타워.서로 멀리 떨어진 이 건물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한국 땅을 읽고 설계했다는 것입니다.왜 이 시리즈를 쓰게 됐나건축 기행이라고 하면 흔히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여행을 떠올립니다. 빌바오 구겐하임을 보러 스페인에 가고, 안도 다다오의 교회를 보러 일본에 가지요.그런데 조사해 보니 프리츠커상 수상자 10여 명을 포함한 세계적인 건축가 22명(팀)의 작품이 이미 우리 곁에 57곳이나 있었습니다. 주말에 KTX나 차를 타고 다녀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더 흥미로운 것은 건물마다 담긴 사연입니다.교보생명 창업주와 마리오 보타의 인연은 30년 뒤 화성의 대성당으로 이어졌습니다.재일..

[패시브 50] 12. 성적서의 λ는 '갓 만든·바싹 마른' 값입니다 — 벽 속에서 람다는 변합니다

한 줄 요약시험성적서의 열전도율은 건조 상태에서, 정해진 평균온도로, 대체로 갓 만든 시료를 잰 값입니다. 실제 벽 안에서는 발포가스가 빠지며(노화), 습기를 머금으며(함습), 온도가 오르며(온도의존성) λ가 올라갑니다. ISO 10456은 아예 이 셋을 보정하는 식 λ₂ = λ₁ · F_T · F_m · F_a 를 규정해 두고 있어요.단열재 고를 때 다들 성적서부터 봅니다. "0.034네, 가등급이네." 숫자 한 개로 재료가 정해져요.그런데 그 숫자는 조건이 붙은 숫자입니다. 시험실에서, 건조한 시료로, 정해진 평균온도에서 잰 값이에요. 겨울 새벽의 지중 벽체도 아니고, 8월 오후의 지붕도 아닙니다. 국제표준 ISO 10456은 λ를 아예 "기준 온도·습도 조건에서 측정 데이터로 평가한 값"이라고 정의..

[패시브 50] 11. "가등급으로 주세요" — 그 한마디로는 단열재를 못 고릅니다

한 줄 요약열전도율 λ는 단열재를 고르는 일고여덟 개 기준 중 하나입니다. λ가 가장 낮은 축에 있는 페놀폼은 국내 1,100일 침수 실험에서 무게가 약 8배로 늘었고, "물을 안 먹는다"던 압출법 단열재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15년 지중 실험에서 단열 성능의 44%를 잃은 현장이 있었습니다. 정답은 계열이 아니라 부위에 있어요.단열재를 주문할 때 현장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가등급으로 주세요."틀린 말은 아닙니다. 국내 「건축물의 에너지절약설계기준」은 단열재를 열전도율만으로 가·나·다·라 네 등급으로 나눕니다. 가등급은 0.034 W/mK 이하예요. 두께를 정할 때 실제로 이 등급을 씁니다.그런데 이 한 줄이 지우는 정보가 꽤 많습니다. 가등급 칸 안에는 압출법보온판도, 비드법..